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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전후 YMCA의 재건(1945-1960)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면서 암흑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광주YMCA 여러 회원들도 재건의 깃발을 들었다. 그 해 늦가을 재건총회를 열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최흥종 회장을 중심으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회원을 모아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였다. 순회전도단이 각 지방을 돌며 복음전도를 하였고 농촌사업을 재개시키기 위하여 양림동회관의 밭을 경작하였고, 모금을 하고 철학강좌를 통해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도록 교육시켰다. 국학강좌를 열어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말과 글이 널리 활용되도록 하였다. 또 <새생명>과 <빛의 아들>을 발간하여 회원들에게 혼란한 사상 가운데 기독교정신을 확신시켜주고 Y의 목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재건기 광주YMCA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충장로 회관을 환수하는 일이었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양림동회관과 황금동회관 등을 사용할 수 있어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지지도자들과 대학생, 소년회원들이 지도력 개발과 봉사활동, 수양회를 통해 Y의 목적사업을 수행하였다.


어렵게 재건에 힘쓰고 있을 때 비극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광주YMCA는 최영욱회장, 박석현이사가 공산당의 총살에 희생당하는 큰 손실을 겪었다.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YMCA활동의 대다수 기록물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고난의 극복은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기치를 내걸고 회원 모두가 합심하여  부흥의 횃불을 들었다. 프로그램의 확대를 위해 금남로 2가 회관을 구입하였고 다시 금남로 1가 회관부지도 마련하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역사회를 위한 Y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대학Y 조직 확대, Hi-Y 클럽,  성인클럽조직, 와이즈멘클럽 발족 등 회원운동체의 자원을 발굴하였고 워크캠프, 농촌봉사활동, 의료봉사활동, 장학금 지급,  문화활동과 체육활동, 어린이 인권 보호, 직장인 초청 간담회 등도 실시하였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실무지도력이 안정되지 못한 탓에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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