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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과 YMCA(1980-1990)


정치적으로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국민을 통제하던 군사독재정권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인 중정부장 김재규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18년 군사독재정권의 끝을 맺는 듯하였고 국민은 민주국가 실현의 기대를 안고 1980년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전두환 군사정권은 1980년 5월 18일, 우리 현대사에 또 하나의 비극인  광주민중항쟁의 불씨를 던졌다. 2,000여명의 시민이 죽음과 부상을 당하고도 오히려 독재정권의 왜곡보도와 정보통제로 인하여 광주시민들은 반정부 불순분자로 비난을 받았다. 5.18 광주민중항쟁 이후 광주시민의 큰 희생 때문에 국민의 인권과 자유와 존엄성은 스스로 보호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신장되었고 그동안 우방국으로만 믿었던 미국에 대한 재인식이 싹텄다. 삼엄한 5공 치하에서 투옥되거나 고문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존엄성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시민저항운동은 80년대 내내 광주를 위시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시민의식화에 따른 지역주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통일운동, 교육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민중문화운동 등이 확산되었다.


 (1) 1982년 ‘미문화원방화사건’을 계기로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시작하였고  1986년 부천 권인숙 성고문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이어 연세대학교 재학생 이한열이 1987년 6월 10일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사경을 헤매면서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가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6월 항쟁이 전국을 휩쓸었다.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 평화적 정권이양, 언론기본법 폐지 등을 주로 하는 「6.29 특별선언」을 이끌어내었다.


 (2) 광주민중항쟁으로 인하여 지도자 및 회원들의 끊임없는 구속과 재판, 수배, 시위 등이 이어지며 1980년대 광주YMCA의 주요 프로그램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주요한 사업은 본격적 국제교류 실시, 시민중계실, 교육민주화운동, 외산담배추방운동, 어린이 캠프의 활성화, 시민문화교육 강화, 시청자 운동, 시민의식개발교육, 평화통일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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