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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YMCA 창립과 초창기(1920-1936)


1904년 미국남장로교의 배유지 선교사에 의해 광주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교회와 숭일, 수피아 등 기독교학교와 제중병원이 세워지면서 기독교인들이 날로 증가하였다. 이에 1911년 숭일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숭일학생YMCA가 조직되어 광주YMCA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나라를 잃고 땅을 빼앗기며 가난에 허덕이고 민중의 질고가 심해졌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광주가 전라도 지역의 중심부로서 자리 잡으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철도역이 건설되면서 광주에 많은 일본인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우리 민족의 삶은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되어 갔다.  1919년에 삼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민족독립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고 더 큰  좌절을 낳았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이 필요하였다. 민족을 위한 기독교 운동의 필요가 절실하여졌고 1920년 광주 YMCA가 창립되었다.  광주YMCA는 창립 이래 1935년까지  덕육부(德育部)는 하령회와 종교집회, 하기아동학교 등을 주관하고, 지육부(知育部)는 강연, 야학, 유치원, 교육 사업을 맡고, 체육부(體育部)는 축구, 야구, 권투, 유도부, 또 YMCA 소년척후대를 운영하였다. 1925년 피폐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하여 농촌센터를 설립하고 개량농사법을 가르치고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교육, 위생과 질병예방 등 농민 건강을 위한 사업과 농업실습학교를 세워 농촌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처음에는 회관이 없어 상황에 따라 장소를 옮겨가면서 활동하였는데 1932년 충장로에 회관을 마련하고 청소년을 위한 체육교육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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