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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인하트(서로득 徐路得 Martin Swinehart) 선교사, 광주YMCA 고문


서로득 선교사는 1911년에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선교사로서 목사가 아닌 장로이다. 그 분이 언제부터 광주Y의 고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25년 8월 31일에 ‘광주Y 고문 서로득 귀국 환영회’가 최영균 사회와 최흥종 환영사로 진행되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나와있다.
서로득 선교사는 먼저 건축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로서 1927년에 수피아 여학교의 윈스보로 홀(현 수피아여중 본관)을 건축하였고 전주 신흥학교의 리차드슨 홀을 지었는데, 신흥학교 본관은 소실되었다. 이것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양옥이다. 광주의 종교와 문화의 센터였던 ‘오원 기념각’도 서로득 선교사가 1914년에 지었다고 한다.


또한 서로득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주일학교 운동의 전문가로서 유아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 1912년 2월에 발족한 조선 연합주일학교협회의 초대회장에 서로득 장로가 추대되고 총무는 평양의 허대전 목사가 맡게 되었는데 한국의 초기 주일학교 운동은 이 두 분의 공적으로 돌려야 한다고 김수진 목사는 『한국기독교회사-호남편』에서 말하였다.


1927년 광주 중앙교회가 중심이 되어 제1회 전남노회 주일학교대회가 오원 기념각에서 개최되었을 때에도 서로득 장로가 강사로 수고하였다. 그는 확장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중흥학교(현 중흥교회 자리), 서흥학교(현 상무동 내방교회 자리), 숭명학교(구 역전), 배영학교(현 서현교회 자리)라는 4년제 간이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뒤에 숭명학교는 숭일학교 보통과에 편입되었고, 서로득 선교사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1937년에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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