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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혁(曺圭赫) 16대 회장


1930년 6월 17일 광주시 양림동에서 조일환 장로의 2남으로 출생하여 양림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성장하였고, 1959년 장로 임직을 받아 복음선교에 힘썼다. 광주 서중을 거쳐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남의대에 조교로 부임하여 1962년에 전임교수가 되었고 임상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1963년)하여 의료진을 양성하였는데, 군의관(1957-1960)근무를 제외하면 1993년 소천시까지 평생을 의대와 병원에서 시무하였으며 전남대의대 학장(1980- 84)도 역임하고 대한법의학회 평의원, 대한병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의학발전에 이바지하였고,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신경병리학을 연구한 바도 있다.


사회활동으로는 60년부터 한국 보이스카웃 전남연맹 이사로 수고하였고, 보이스카웃 광주지방 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봉사클럽인 ‘와이즈멘’ 활동도 열성적으로 하여 무진클럽 창립회장(1976년) 과 한국남부지구 총재(1982-1983), 국제본부의 국제의원(1985-1988), 한국지구협의회 의장(1988-1989)등을 역임함으로써 와이즈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광주YMCA를 위해서는 1954년부터 의무지도자로 일했고 전남의대Y의 지도교수로 수고했으며, 1961년에 이사로 선임되어 각부 위원장으로 봉사하는 한편 광주Y회장직을 맡아(1971-1972) 김천배 총무 은퇴 후의 광주Y를 안정화시키는데 힘을 다하였다. 또한 83년부터 재단이사로 활동하고 오방장학회 이사장과 재단이사장(90-93)으로 일하던 중에 간암으로 투병하다 1993년 10월 18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사후에도 안구와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생명나눔운동의 본을 보였으며, 전남의대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남평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조규혁 박사는 평생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였으며 YMCA 봉사에서도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한 지도자로서 Y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힘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자 장로와 아들 조윤호 장로, 조경호 의사 등을 두었는데, 조박사 조부인 조경주 장로(나주 반암 대안교회 설립)부터 시작하여 4대 장로를 배출한 기독교 신앙의 명문으로 알려졌다. 아호는 묵연(黙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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