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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세(鄭寅世 ) 6대, 8대 총무


 이 고장 체육계의 선구자인 김후옥 간사의 권유로 30년대 초에 광주Y간사로 부임하여 유도와 덴마크식 기계체조를 지도했던 정인세는 초대회장 최병준의 사위가 되어 광주에 정착했다. 그는 39년 일제가 조작한 미국 스파이서건에 연루되어 백영흠, 김천배, 문천식, 조아라, 김현승 등과 함께 옥고를 치룬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최흥종 목사의 권유로 다시 광주에 내려와서 광주Y의 재건 총무가 되어 46년 말까지 시무하였고, 48년 5월부터 10월까지 또 봉사하게 된다. 특히 그는 양림동 회관을 마련하여 청소년의 영지체 운동을 전개했고, 농촌운동을 재개했다. 그는 백영흠 목사가 수피아여중고의 교장으로 부임하자 47년부터 48년까지 수피아 교감으로 시무한다. 또 정인세는 고아들을 돌보는 동광원을 설립하였는데 처음에는 양림회관 옆에 수많은 고아들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비판이 일어나자 방림동으로 옮기게 된다. 동광원은 뒤에 고아사업을 중단하고 신비주의적 수도단체로 바뀌게 되는데 이현필의 지도 아래 금욕생활과 노동수도, 재산공유 등 이질적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정인세는 또한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귀일원’을 설립하여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였고, 1991년 4월 29일 생애를 마쳤다. 유고문집 ‘님께로 가는 길’이 며느리 윤혜자 엮음으로 출간되었다. 아들 정건모는 서울에 있는 노아복지재단의 회장으로서 사회복지운동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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