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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_icon.jpg 백영흠 9,11,13대 이사장

광주YMCA 초대 재단 이사장 및 9,11,13대 이사장을 지냈다. 은제(隱齊) 백영흠은 1904년 7월 2일 경기도 인천 출생으로서 남장로교 군산선교부에서 설립한 영명중학을 졸업하였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대학 사회학과를 마쳤다. 그리고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1930년부터 일제말까지 전도사(당시는 조사)로 활동하여 화순읍교회와 보성지방 교회에서 순회 봉사하였다.

1940년 9월에는 선교사들과 가까운 기독교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미국 스파이로 죄목을 씌우고 탄압하였는데, 백영흠, 김천배, 조아라, 조용택, 오동옥, 박동환 등이 고초를 겪었다. 백영흠은 해방 직후 광주Y를 재건할 때 회장 최흥종 목사를 도와 부회장 일을 맡았으며 정인세 총무와 함께 Y재건에 힘썼다. 

백영흠은 해방 후에 목사가 되어 1946년 1월 일본 교회였던 적산가옥을 인수하여 동부교회를 설립하고 1978년까지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그 때 동부교회는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교회였는데 예배의식은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선 개혁적인 교회였다. 코리아타임을 배격하여 예배시간을 준수하고 (문을 잠갔다) 헌금함을 입구에 설치하여 연보주머니를 돌리지 않았고 남녀성을 구별치 않고 혼합해서 앉도록 했으며, 찬양대를 2층에 배치하고 찬송가와 성경구절을 벽지로 계시하였다. 백목사는 키가 작고 마른편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으나 고집스러웠으며 결혼식 때 시간이 늦으면 주례를 거부할 정도였다. ‘동광원’의 지도자 이현필과는 동서간이다. 

또한 백영흠 목사는 1947년 6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수피아 여중고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1980년 5.18시에는 죽음의 행진에 참가하였으며, 1986년 별세하여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자녀로는 석윤(재미), 진석과 세 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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